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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구의 역사

‘Basket’ball 다운 농구 탄생기 

왜 basketball일까?

농구는 1891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 있는 YMCA 국제 훈련학교의 체육 강사인 James Naismith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추운 겨울철이었던 당시 학생들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체조나 무용뿐이었기에, Naismith의 상사는 그에게 “추운 날씨에도 운동선수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실내 스포츠 게임을 만들어 달라”는 임무를 주었어요. 


Naismith는 학교 관리인에게 두 개의 정사각형 상자를 요청했고, 관리인은 상자 대신 두 개의 복숭아 바구니를 가지고 왔어요. 

그러자 그는 바구니를 각각 체육관 발코니 하단 레일에 걸었어요. 발코니 레일의 높이는 305cm였고요. 이는 현재 ‘림’으로 불리고 있어요(놀랍게도 현재까지 아직 변하지 않은 규정이에요!) 


“9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축구공을 복숭아 바구니에 넣어보자” 

Naismith는 반 학생들에게 규칙을 설명한 뒤 휘슬을 불었고 

그때, 바로 지금의 농구가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학생들은 상대 팀 바구니에 서로 공을 넣으려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농구를 미식축구처럼 착각해, 거친 경기를 펼쳤고 첫 경기에서 많은 부상자가 나왔어요. 그러자 그는 두 번째 경기에서 13개의 룰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바로 현대 농구의 기본적인 룰과 동일한 ‘볼은 손으로만 플레이할 것’, ‘볼을 가지고 달릴 수 없으며 주먹으로 공을 쳐서는 안 된다.’ 등의 룰이었어요. 


또한 바구니에 담긴 공을 빼내는 수고를 덜기 위해 바구니에 구멍을 뚫었고, 지금의 농구 골대가 되었죠. 


경기를 본 이들은 이 스포츠를 ‘Naismith Ball’이라고 부르자고 했지만, Naismith는 ‘Basket Ball’(1921년부터 ‘Basketball’ 한 단어로 표기되기 시작)이라는 명칭이 더 인기를 끌 것 같다며 이를 제안했습니다. 그가 제안하지 않았다면 ‘Naismith Ball’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이처럼 초창기의 농구는 빠르게 틀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그거 아세요?

Naismith가 농구를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축구보다 덜 다치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경기 중 몸싸움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죠. 

이는 또 다른 실내스포츠인 배구의 탄생 배경이 되기도 했어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이 농구를 즐기다 

YMCA는 전 세계에 농구를 전파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농구가 만들어진 몇 주 후, 학생들에 의해 농구를 소개하는 내용이 대학 잡지에 실리게 되었어요. 전국의 YMCA들은 우편으로 발송된 잡지를 통해 농구를 접할 수 있었죠. 또한 미국 전역 고등학교와 대학 곳곳에 소개되며 국제 학생 단체로 인해 세계 곳곳에 퍼졌고, 마침내 1905년에 이르러서는 겨울 스포츠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어요! 


이후 유럽에 도착한 농구는 매우 빠르게 발전하였고, 190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첫 국제 경기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Mayak Saint Petersburg는 YMCA American 팀에 승리하여 세계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답니다. 

또한 1919년에는 유럽 최초로 파리에서 대회가 개최되었어요. 여기서 미국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이는 곧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들이 농구를 접하는 계기가 되었죠. 


이렇듯 농구가 세계적 규모로 커지면서 토너먼트와 팀을 조율하기 위해 국제기구 FIBA(International Basketball Federation)가 1932년에 결성되었어요. 이 단체는 추후 베를린 올림픽에서 농구가 최초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NBA, 다사다난한 탄생기 

세계화에 성공한 프로 스포츠 리그 중 하나인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는 1946년 BAA(Basketball Association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어요. 

NBA는 출범과 동시에 농구 룰에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자유투 라인을 확장해 센터의 영향력을 줄이고 24초 공격 제한을 도입, 그리고 3점 라인을 도입하면서 농구는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1898년 창립되었다가 운영 문제로 인해 곧 사라졌던 NBL(National Basketball League) 가 1937년 다시 같은 이름으로 나타났어요. 그리고 BAA 리그와 NBL 리그는 서로 라이벌 관계가 되었죠. 

초반의 BAA는 팀들의 경기력도 형편없을뿐더러, 11개의 팀 중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어요. 그러나 1949년, BAA는 NBL을 점차 밀어내어 마침내 흡수합병을 할 수 있었는데요, 과연 그 비법은 무엇이었을까요? 

BAA는 설립 초기부터 안정적인 재정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도시를 확보하였고, 구단주의 대부분은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보유했죠. 

합병 이후엔 영역을 확장하여 총 17개의 팀이 되었지만,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암묵적인 인종차별로 인해 팀 수가 다시 줄어들게 된 거죠. 흑인 선수들에게 출장 제한을 주고 흑인 선수 쿼터제까지 있었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NBA와 NBL의 합병 이후, 1967년 ABA(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가 등장하면서 또다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NBA에 흡수합병 되었습니다. NBA는 이렇게 두 번의 위협을 겪었지만, 이는 곧 NBA에 다양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거대 기업이 되어버린 NBA 

NBA와 ABA 합병 이후, NBA에는 슈퍼 플레이어들 등장하며 성장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1979년 NBA의 성공 시대를 열어준 희대의 라이벌, 매직존슨과 래리버드. 이 둘의 관계는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NBA가 세계적 리그로 도약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등장한, NBA의 위상에 정점을 찍어준 마이클 조던! 

농구는 잘 몰라도 ‘조던’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거예요.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면서 NBA뿐만 아니라 그와 계약한 나이키도 세계 최고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했어요. 그는 농구 레전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세기가 끝날 무렵, NBA는 무려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을 성장하게 되었고 이로써 농구는 미국의 필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농구 IN 올림픽; 최강국은 과연 미국일까? 

1891년부터 농구가 시작된 만큼, 길고 긴 농구 역사에서 올림픽을 빼놓을 수 없겠죠? 


1936년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최초로 남자 농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어요. 

여기서 미국은 농구 강국답게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가져갔고요. 

이후 2020년 도쿄 대회까지 총 16차례나 우승하며 세계 최강의 농구 대표팀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특히 미국 농구 대표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을 결성했는데요, 들어보셨나요? 

이름하여 ‘드림팀’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입니다. 

어빈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등 12명의 NBA 슈퍼스타들이 합류하였고, 이들은 세계 농구의 정점을 찍고 돌아왔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엄청난 성과는 이후 NBA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데에 큰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농구 탄생국답게, 여자 농구 또한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 농구는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어요. 

미국 여자 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시작으로 도쿄 대회까지 7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독식하였고 이로써 이들은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열린 여자 농구 12차례 대회 중 9번의 우승을 기록해냈습니다. 

제목2: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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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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